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을 그에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에 소유
내가 어딜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빠라 부를때 그가 들으시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빠라 부를때 그가 들으시죠
그가 들으시죠
(Tommy Walker의 찬양 ‘나를 지으신 주님’ )
서른 살까지 그야말로 낭비하는 삶을 살아드랬습니다. 술에 취해 지내던 때가 많았고, 담배는 그야말로 입에 달고 살았죠. 가장 문제는 목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철이 없었던 삶이죠. 그냥 하루를 허비하며 살았습니다. 내 삶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목표나 목적도 없이 그냥 세상이라는 바다 속에서 표루하면서 그렇게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죠.
그러던 제가 교회에 나왔으니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더군요. 형제 자매라는 호칭도 그렇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존중해 주는 모습도 그렇고, 예배 때마다 환영한다며 일으켜 세우고 축복해 주는 것은 더더욱 체질에 맞질 않았습니다. 지금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이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은요, 교회 다니는 청년들의 입에서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들이었습니다. 모두들 입을 열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싶다고, 자신을 지으시고 빚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니,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이라니, 그런게 정말 있기는 한 건가?
게다가 한 수 더 뜨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요. 하나님의 음성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다는 건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고, 내가 사람들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어디를 가나 이런 말들이 오고 갑니다. 막 교회에 나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다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질 않아, 어림 짐작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참 많았죠. 그렇다고 대놓고 알려 달라고 할만큼 숙기가 많은 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저와 함께 교회에 같이 나간 선배님 부부가 하나하나 일러 주시더군요. 그분들이 젊었을 때에 받았던 신앙의 훈련들을 하나하나 전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 보라고, 이런 책들을 읽어 보라고. 그리고 같이 다른 예배에도 나가자고 하시고, 기도 모임에도 같이 데려다 주셨죠. 그러면서 차츰차츰 교회에 적응을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차츰차츰 그 이상함들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고, 이해가 되더군요. 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이상한 말과 행동들을 제 자신이 하게 되더군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저를 인도해 주시면서 제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먼저, 소망 없는 삶을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목적으로 채우게 하셨습니다. 소망 없이 세상 속에서 표류하던 제 삶에 목적을 갖게 하셨습니다.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명확한 방향을 잡고, 목표를 설정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주님께 드려진 삶을 살고, 그분께 남은 생을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드려진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시더군요. 그게 지금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드려진 삶을 살겠다고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린 순간부터 제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좋아하던 술도 시간을 두고 완전히 끊게 하시더군요. 그리고 제일 고민이었던 담배도 어느 순간 생각도 나지 않게 하시더군요. 그리고 제 주변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게 해 주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저를 지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 외에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사랑에 눈을 뜨게 하시더군요.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어색하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포근함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품에 안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그렇고, 기도 모임이나 청년부 모임에 참가할 때도 그렇고, 처음 한 동안은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눈물이 흘린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눈물샘이 터져 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고 나면 한결 평안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 저를 향해 주님께서 따뜻하게 품어 주셔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격스럽고, 따뜻한 뭔가를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저를 감싸고 있었고, 그분이 친히 저를 따뜻하게 품어 주신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싶었고, 그분이 도대체 누구이신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선배 부부가 추천해 주는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신앙 서적들을 읽었죠. 정말 눈 뜨면 성경을 읽고, 어디를 가나 틈만 나면 신앙서적들을 읽었고,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책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래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분을 알아갔죠.
그리고 세밀한 그분의 음성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나마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생각을 아시며, 나를 인도해 가시는 그분을 조금씩 조금씩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나와 동행하심을 깨닫게 되면서 너무나 큰 감사가 몰려 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나는 그분의 소유임을, 처음부터 제 삶은 그분의 손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딜가든 그분은 날 떠나지 않으시고, 내 이름을 아시고, 내 모든 생각을 알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내 아버지이심을, 그분은 오랜 동안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나를 지으신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내게 소망을 주신 주님, 그분의 사랑에 눈 뜨게 하신 주님, 아바 아버지가 되어 주신 주님, 그 주님께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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