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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에세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어디인지를 잊지 말자!!!

by 이소식 2018.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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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일간 이곳에서 유행하고 있는 B형 독감으로 톡톡히 고생을 했습니다.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오르더니, 근육통으로 온 몸이 저려오더군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배까지 아파 오면서 설사를 하고,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축 늘어진 채로 몇일을 보냈습니다. 저한테 옮은 아이도 계속해서 열이 떨어지질 않아 아내가 참 많이 속앓이를 하며 저희들을 돌보았죠. 아내의 간호 덕분에 이제서야 겨우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증세가요, 완전히 고산병이랑 너무나 비슷했습니다.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힘이 쭉쭉 빠지는 게요. 앞으로 이런 경험들을 밥먹듯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두렵고 떨리더라구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제게 맡겨 주신 일들을 잘 감내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프니까, 정신까지도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몇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몸도 마음도 좀 추스리고 다시금 묵상의 자리로 나왔더니,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스데반의 설교 본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 그리고 모세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낱낱이 설명하고 있었죠.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희들도 광야를 건너가고 있는 여정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야 길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그 모든 과정들을 이겨내야만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만을 바랐지, 그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이 광야의 여정을 너무 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광야 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훈련들이며, 필수 코스들이 있는데, 내 자신이 광야 길을 가고 있음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부분을 망각한 채 어떻게든 목적지에만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빨리만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뒤돌아 보게 되더군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다시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이 그냥 시체마냥 누워만 있으니까, 고국의 따뜻한 난방이 그립고, 따뜻한 김치찌게가 그립고, 뭐든 다 그립더군요. 한국에서 뭘 하든 여기보단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희들이 가야 할 그 고산들이 함께 떠올려지면서 제가 그 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그리고 라ㅁㅂ교라는 그 견고한 진을 잘 뚫고, 완전히 다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그분의 십자가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그분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그것도 그들의 모국어로 말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습니다. 전 정말 못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털컥 겁이 나더군요. 프로젝트가 잘 진행이 될 수 있도록 펀드도 승인을 내 줬는데, 많은 분들이 힘들여 마련해 주신 프로젝트 후원금인데, 이 많은 돈을 그냥 허투루 써 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 싶더군요. 이걸 받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더군요.


몸이 아픈 동안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는 걸 느끼시겠죠? 저도 정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묵상하면서 광야길을 잘 헤쳐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자꾸만 꿈틀내며 튀어 나오는 헛된 생각들을 내려놓고, 저를 뒤흔드는 나약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우선은 이 광야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끝까지 제가 가야 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목적지까지 달려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법은 좀 바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좀 더 올드해진 몸 상태도 고려하면서, 좀 더 몸과 마음이 적응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면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집중해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더 꼭 의지하면서 나아가야겠다 싶더군요. 그래야만 끝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하루하루 해가 지날 수록 몸과 마음의 격차가 상당하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흔들림 없이 이 광야 길을 잘 헤쳐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더 풍성히 주님을 경험하고,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걸 배워 나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