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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에세이

이 땅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by 이소식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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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나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여년 넘는 시간 동안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거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쉽게만 여겨집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됩니다. 이것보다 쉬운 구원은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희들이 섬기는 티벳인들은 놀라운 종교적 열심을 보여줍니다. 매일같이 마니차를 돌리고, 염주와 주문을 외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일생에 번은 성지라고 여겨지는 라싸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다녀오는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집에 모셔 놓은 신당에 버터를 태우고, 공덕을 쌓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행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들이 다음 생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없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열심을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자체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희들은 거저 먹기나 다름 없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독교에 대해서 모를 때나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느끼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꺾고 꺾지 않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날마다 안에서 꿈틀거리는 죄악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는 그분의 자녀로 성장해 가고, 성숙한 그분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까요? 대답은 사도행전 11 19절에서 30절의 말씀에서 찾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문을 보게 되면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했길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구별된 이름으로 불리게 것일까요?


그들은 먼저 끊임없이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지만, 그들 틈에서 말씀을 받은 이방인들은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씁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를 믿고 알게 구원의 기쁨, 감격을 많은 이들과 나누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쁨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들까지고 주님께로 돌아올 있었고, 이방 땅에도 교회가 세우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성령과 믿음의 충만한 사람이었던 바나바가 이방 교회를 위해 파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 주고, 그들의 믿음의 성장할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임을 가졌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가기 위해 배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믿음은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주님께서 땅에 오셨고, 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을 알아갔을 것입니다. 그분을 깊이 알아갈수록,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을 없었을 것이고, 세상 속에서 구별된 모습을 보이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변의 아픔들, 주변의 필요들을 보고, 나눔과 섬김을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신도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고, 바나바와 사울 편에 구제금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말뿐인 신앙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을 어떻게든 속에서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사했을 것이고, 그들이 구별된 사람들임을 느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회복해야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아픔들, 주변의 필요들을 살피고, 나눔과 섬김을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구별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세상 속에서 구별되게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잊지 말아야 것이 있습니다. 말뿐인 전도, 삶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세상 속에 모범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수많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로만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따로, 신앙 따로인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누구보다도 홀리한 하고, 세상 속에 나와서는 돈과 명예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끼리끼리만 모여서 지내면서 나눔과 섬김의 삶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많이 나누고, 많이 섬기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묵묵히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 나가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알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그런 삶을 원하십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에 옮기고,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당당히 드러낼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땅에서 보여 주신 것처럼 나눔, 섬김, 배려, 그리고 희생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달프고, 힘든 일이지만, 묵묵히 이겨내면서 가야 합니다. 주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풍성히 은혜를 내려 주실 것이기에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